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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 이야기
2024.08.26 16:05

섬, 여행지에서 일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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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여행지에서 일터로

 

지역자산화협동조합 팀장 안은성

 

 

어른이 된 후 가족들과 함께, 때론 혼자 여행지를 선택할 때마다 1순위 후보지는 항상 바다였다. 동해 바다를 보고 싶을 때는 강릉으로, 기차 여행을 하고 싶을 때는 부산으로, 비행기를 타고 멀리 가고 싶을 때는 제주도로. 그렇게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한 눈에 펼쳐지는 푸른 바다를 바라보노라면 일상을 휘젓던 골치 아픈 일들이 어느새 수평선 너머로 흩어지곤 했다. 

 

그렇게 여행으로만 접하던 바다를, 지역자산화협동조합에서 활동가로 일하며 '어촌 사회'라는 렌즈로 들여다보는 일을 하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하던 일이었다. 도시에서 커뮤니티 공간을 운영하고, 도시사회학을 공부하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섬으로 출장을 다니며 어촌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될 줄은.

 

 


 

 

#고흥, 오취마을 출장기

 

올해 2월. 성북의 본사로 출근한 다음 날, 고흥의 사도-취도 마스터플랜 수립을 위한 주민전수조사 업무를 위해 출장을 가게 되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현장에 익숙해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적응을 위한 며칠간의 본사 근무를 마다하고 내려간 터였다. 처음엔 함께 일하는 직원 숙소에 신세를 지기도 하고, 읍내 모텔에서도 자고, 다른 직원이 새로 입주할 빈 아파트에 머물며 앵커조직이 있는 오취마을로 버스를 타고 출근을 했다. 잠자리에 예민한 탓에 낯선 지역에서 수시로 바뀌는 잠자리가 편치는 않았지만, 정작 힘든 일은 따로 있었다.

 

 

1.jpg

이틀간 묵었던 고흥 읍내 모텔. 바닥도 따뜻하고 침대에도 전기장판이 있어 집에서만큼 푹 잘 잔 숙소 

 

 

 

고흥에서는 20년 넘게 활동하던 의정부에서 구축한 자원과 사회적 연결망을 하나도 활용할 수가 없었다. 앵커 사무실에서 문서를 스캔하거나 설문지를 스태플러로 찍는 단순한 업무조차 쉽지가 않았다. 궁금한 게 있어도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모르겠고, 도움을 요청하려해도 누가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업무의 비효율성도 문제였지만, 관계의 밀도가 하나도 없는 타지에서의 이방인 같은 느낌이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이었다.

 

현장에서 겪는 이물감이 서서히 옅어진 건 설문조사를 위해 섬에서 만난 주민들 덕분이었다. 설문조사는 하지 않겠다던 노인회관의 할머니들을 설득해 설문을 받아내고 밥도 얻어먹고 청소도 도와드리며 미약하나마 관계가 쌓이자, 이방인 같기만 하던 불편한 마음이 조금씩 허물어졌다.

 

 

 

고흥 주민전수조사.jpg

에코백에 주민들께 드릴 달력과 설문지를 넣어서 가가호호방문하며 이루어진 취도-사도 주민전수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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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여성노인회관에서 얻어먹은 할머니 밥상

 

 

다리가 불편한 주민의 부탁으로 읍내에서 세제를 사다주고 김치를 얻어먹은 일은 낯선 곳, 낯선 관계 속에서도 자기 역할을 찾아가는 활동가로서의 정체성을 오랜만에 경험하게 해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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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로 방문했다가 부탁하신 섬유유연제를 사다드렸더니 고맙다고 나눠주신 김치 세 쪽 

 

 

생각해보면 짧은 시간이나마 이방인이라고 느꼈던 감정은 처음 고흥에 어촌앵커조직을 설립한 활동가들도 경험한 감정일 것이다. 낯선 어촌 지역에 자리를 잡고 주민들을 만나며 일을 개척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터. 그들이 쌓아놓은 주민들과의 신뢰가 없었다면, 나 같은 신입 활동가가 어떻게 주민들을 만나며 설문을 받을 수 있었겠는가. 

 

앵커 사무실에서 고흥 읍내 핫플 카페의 원두로 커피를 내려마시고, 사무국장님이 손수 해주신 점심밥을 얻어먹으며 조금씩 현장에 녹아들 수 있었던 것은 먼저 이 마을에 터를 잡고 고군분투해 온 선배 활동가들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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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취도 어촌앵커조직 이정인 사무국장님이 끓여주셨던 잔치국수

 

 

입사와 동시에 성북에 있는 본사로 출근한 이틀을 제외하면, 한 달여를 고흥을 오가며 일한 덕분에 섬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갖게 됐다. 잠시 머물다 가는 이방인에게는 그저 아름다운 풍경으로만 기억될 장소가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이들에겐 소중한 삶의 터전이라는 것. 고령화로 소멸되어가는 어촌이라는 언론기사와 데이터 너머에 존재하는 그들의 일상과 이야기를 조금이나 엿보게 된 것이다. 하루의 일과를 이웃들과 함께 모여서 보내고, 낯선 이라도 한 번 마음을 열면 밥과 반찬을 내어주는 두 섬마을에서 공동체의 원형을 마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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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취도 어촌앵커사무소 인근의 산책길에 볼 수 있는 갯벌 풍경

 

 

여행자가 아닌 활동가로서 만난 고흥의 오취마을과 사도마을은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풍경일 수 없었다. 사도마을 할머니들에게 드릴 사탕을 사놓고, 다리가 불편한 종여님의 심부름은 누가 해줄지 괜한 걱정을 하게 만드는 곳이 되어버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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