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죽도 죽도 어촌앵커조직 오택진 팀장
오랜 직장 생활을 끝내고 회사를 떠난 것은 나 자신을 위한 용기 있는 선택이었다.
더 이상 회색 빌딩 숲에서 기계처럼 일하고 싶지 않았다. 땀 흘리며 일하고, 그 성과를 온몸으로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10년 넘게 다닌 직장을 뒤로하고 어촌으로 내려왔다.
낯선 바다와 맞서 싸워보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바다의 매력을 꿈꾸던 내게 어촌은 도전 그 자체였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다들 몇 그물씩은 거뜬히 낚을 텐데… 왜 난 이 모양일까." 배 위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몇 달 전부터 필요하다는 강의를 찾아다니며 공부하고 실습을 거쳐 어업 교육을 마쳤고, 어업인 대출까지 받아 배와 장비도 마련했다.
그러나 막상 바다에 나가면 성과는 기대에 훨씬 못 미쳤다.
처음엔 단순히 운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달라지는 건 없었다.
6개월이 흘렀다. 잡히는 물고기는 여전히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수입은 간신히 생활비를 감당하는 수준이었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어촌에서 만난 마을 어르신들과 청년들의 삶을 보며, 나의 고난은 그들의 무거운 노동에 비하면 사치에 가까웠다.
그들은 실패에 연연하지 않고 그날의 바람과 조수에 맞춰 묵묵히 하루하루를 이어갔다. 그 모습이 큰 깨달음이 되었다.
다행히 마을 사람들과는 잘 지냈다. 나를 경계하기보다는 오히려 먼저 손을 내밀며 적응을 도와주었다.
어느 날은 할머니가 농장에서 일손이 부족하다며 불렀고, 다른 날은 이웃 아저씨가 고장 난 보일러를 고쳐 달라고 부탁했다.
의외로 나의 손재주와 말솜씨가 이런 곳에서 빛을 발했다. 잡다한 일에 능숙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아침 일찍부터 농장에서 수확을 돕거나, 고장 난 가전제품을 수리하며 마을 곳곳을 다니는 일이 점점 익숙해졌다.
어촌 생활은 예상보다 다양한 일거리로 가득했다. 물고기를 잡는 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내 고정관념이 서서히 깨져갔다.
어촌에서 나는 단순한 어부가 아니라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엔잡러'로 살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배를 처분하기로 결심했다. 배와 장비는 이제 나에게 지나치게 큰 짐이었다.
더는 잡히지 않는 물고기를 좇으며 지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대신 두 발로 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물고기 한 마리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이 더 소중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떠오르자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며칠 뒤, 나는 배를 팔았다. 그날 저녁, 마을 사람들이 작은 환송회를 열어 주었다.
모두 아쉬워했지만 내 선택을 이해해 주었다. “앞으로도 소일거리 있으면 불러주세요. 열심히 할게요.”라고 말하자, 모두 웃음을 터뜨리며
약속이라도 한 듯 여기저기서 일거리를 제안했다.
그렇게 나는 어촌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바다에서의 실패는 이제 아픔이 아니라 단지 지나간 한 페이지의 경험이 되었다.
대신 마을 곳곳을 누비며 무언가를 고치고, 도움을 주며 하루하루를 채워나갔다.
어부는 되지 못했지만, 어촌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물고기를 잡지 않는다.
문득 지난 6개월을 떠올리며, 나는 그것이 마치 한 폭의 조각 그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조각은 바다였고, 또 다른 조각은 밭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조각들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했던 기억들로 채워졌다.
이 조각들을 하나씩 맞춰가며 나는 어촌에서 새로운 삶의 길을 그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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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촌에서의 삶이 단순히 낭만으로 가득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삶의 활력을 채우고자 귀어를 고민하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바다는 생각만큼 쉽지 않더라도, 그 과정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마을 사람들의 삶 속에서 다양한 방식의 삶을 배울 수 있다는
희망의 공간이자 새로운 관계와 다양한 일을 통해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무대가 될 수 있습니다.
'어촌 엔잡러'는 어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자신의 방식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고 바다로의 도전뿐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귀어를 고민하는 이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인 제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땅의 많은 ‘엔잡러’들이 각자의 꿈을 품고 어촌에 도착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자신만의 새로운 삶을 조각하며 또 하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 있을 것입니다.